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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냥 2024. 11. 1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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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다섯 번째 방> 리뷰: 가족과 공간, 그리고 독립에 대한 이야기

2023년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에서 소개된 다큐멘터리 <다섯 번째 방>은 단순히 한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 공간이 지닌 물리적·심리적 의미를 깊이 있게 탐구한 작품입니다. 전찬영 감독이 연출한 이 작품은 감독 본인 가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며, 특히 엄마 효정 씨의 삶과 그녀가 추구해 온 '독립된 공간'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감독이 그려낸 가족의 초상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관계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현대적 삶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1. 집과 가족의 이야기, 공간의 의미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가족이 살고 있는 오래된 2층집에서 시작합니다. 이 집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감독의 아빠, 감독 자신, 그리고 그의 형제들이 자라온 터전입니다. 카메라는 천천히 집의 외부와 내부를 둘러보며 공간에 담긴 세월과 이야기를 시청자에게 전달합니다.

이 집은 세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은 방 두 개와 큰 방 하나. 이 방들은 각각 가족 구성원들의 삶과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키운 작은 방, 성인이 되어 떠난 두 누나 대신 남은 남동생 진호의 방, 그리고 한때 할아버지가 계셨던 큰 방이 그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이 큰 방은 할머니의 공간이 되었고, 이후 엄마 효정 씨가 사용하게 되며 가족 구성원 간 공간의 이동과 변화가 시작됩니다.

엄마 효정 씨가 큰 방을 자신의 공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프리랜서 심리상담가로서 경제적인 가장 역할을 맡게 된 시점부터입니다. 그녀는 집안일을 도맡으면서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여전히 진정한 의미의 독립된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녀가 찾고자 했던 '다섯 번째 방'은 단순히 물리적인 방의 개념을 넘어, 자신의 존재와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공간을 의미했습니다.


2. 엄마의 투쟁과 독립의 갈망

효정 씨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며 동시에 가부장제 아래 억압받아 온 여성으로서의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과거 그녀는 남편의 폭력적인 태도와 무관심 속에서도 묵묵히 가족을 돌보며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점차 자신을 억누르던 당연함을 끊어내고자 했습니다. 집안일을 혼자 도맡는 역할에서 벗어나, 가족 구성원으로부터의 독립된 정체성과 물리적·심리적 공간을 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효정 씨가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독립된 공간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할머니가 큰 방을 내어준 이후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강의 준비를 하고 상담 일지를 작성하며 조금씩 독립성을 키워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 구성원들은 그녀의 공간을 쉽게 침범하곤 했습니다. "왜 내가 밥을 먹었는지 신경 쓰지 않고 설거지 안 한 것에만 신경 쓰는지 이해가 안 됐어."라는 그녀의 말은 오랜 시간 그녀가 느껴온 억울함과 답답함을 대변합니다.

특히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이러한 갈등을 극명히 느꼈습니다. 남편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상황 속에서도 자존심을 지키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가족을 돌보는 역할은 대부분 효정 씨의 몫이었습니다. 남편이 보이는 무관심과 비협조적인 태도는 그녀가 독립된 공간과 삶을 추구하게 된 주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3. 공간의 붕괴와 관계의 갈등

효정 씨가 오랜 세월 꿈꿔 온 독립적인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방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는 이 집이 여전히 자신의 집이 아니라는 심리적인 불안감이 존재했습니다. 시댁에서 얹혀사는 사람이라는 인식과 그로 인한 불편함은 그녀를 끊임없이 억눌렀습니다. 이러한 심리적 공간의 붕괴는 할머니의 유산 분배 결정으로 더욱 심화됩니다. 할머니는 이 집을 아들에게만 물려주겠다는 결정을 번복하고 큰고모에게도 재산을 나누겠다고 선포합니다. 이 결정은 효정 씨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단순히 재산의 감소 때문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간 중요한 결정에서 자신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존재를 부정당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편의 무례한 태도는 그녀의 관계적 공간을 지속적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조차 남편은 예의 없이 행동하며 가족들에게 실망을 안겼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녀가 오랜 세월 동안 남편에게 느껴온 두려움과 억압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 '다섯 번째 방'의 의미와 독립의 여정

효정 씨는 결국 집을 떠나 완전히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녀가 말하는 '다섯 번째 방'입니다. 그녀에게 다섯 번째 방은 단순히 새로운 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억압적이고 불편한 가족 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와 자유를 찾는 여정을 상징합니다.

감독 전찬영은 이번 작품을 통해 엄마를 위한 변호를 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엄마가 겪은 고통과 투쟁, 그리고 그녀가 이룩한 독립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5. 감독의 시선: 이해와 용서의 딜레마

다큐멘터리는 엄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빠라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자리합니다. 전찬영 감독은 아빠에 대한 감정을 지난 작품 <바보 아빠>(2013)와 <집 속의 집 속의 집>(2017)에서도 다뤄왔습니다. 그는 여전히 아빠를 향한 복잡한 감정 속에서 이해와 용서의 딜레마를 겪고 있습니다. 이해는 하고 싶지만, 용서는 쉽지 않은 마음. 이는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하며, 가족 간 관계의 복잡성을 더욱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6. 끝나지 않은 이야기, 앞으로의 여정

<다섯 번째 방>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엄마가 독립된 공간을 마련한 것은 큰 변화이지만, 관계와 감정의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기록이며, 앞으로도 계속될 이야기의 시작점일 뿐입니다.

효정 씨의 독립과 자유를 향한 노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녀가 찾은 '다섯 번째 방'은 단순한 공간의 개념을 넘어, 그녀의 삶과 자유를 상징하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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